가사 노동 스트레스, 한국 여성 건강 위협한다
한국 사회에서 여성의 가사 노동 부담은 여전히 무겁다. 맞벌이가 늘어나고 성평등 담론이 확산되었지만, 통계는 변화를 크게 보여주지 않는다. 보건복지부와 통계청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기혼 여성의 하루 평균 가사 노동 시간은 약 3시간 20분으로, 남성보다 두 배 이상 길다. 맞벌이 가정에서도 여성의 가사·육아 부담은 여전히 집중돼 있으며, 이는 여성 건강을 위협하는 주요 요인으로 지목된다.
가사 노동은 단순한 집안일로 치부되기 쉽지만 실제로는 반복적이고 육체적인 고강도 노동이다. 설거지, 청소기 밀기, 빨래 널기, 장보기, 음식 준비와 같은 일상적 행위는 근육과 관절에 꾸준히 부담을 준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자료에 따르면 40대 여성의 요통·어깨 통증 진료 건수는 같은 연령대 남성보다 1.7배 많았으며, 손목터널증후군·무릎 관절염 같은 질환 역시 여성 환자가 월등히 많았다. 전문가들은 이를 “숨은 직업병”이라고 부른다.
특히 가사 노동은 ‘쉬는 날’이 없다. 직장인에게 주어지는 주말이나 휴가와 달리, 가사 노동은 매일 반복된다. 이로 인해 누적 피로가 쌓이고, 신체 회복이 이루어지지 못한 채 만성 통증으로 발전하기 쉽다. 서울대 보건대학원 연구에서는 장기간 가사 노동에 종사한 여성의 60%가 근골격계 통증을 호소했으며, 이 중 절반 이상은 “병원 치료가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가사 노동의 또 다른 문제는 정신적 부담이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기혼 여성의 52%가 “가사·육아로 인한 스트레스로 우울감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특히 맞벌이 여성들은 직장과 가정 양쪽에서 ‘이중 노동’을 겪으며 극심한 압박에 시달린다.
심리학자들은 이를 ‘보이지 않는 부담(mental load)’이라고 정의한다. 단순히 집안일을 하는 시간을 넘어서, 가족의 식단 계획, 아이들의 학교 일정, 노부모 돌봄까지 정신적으로 관리해야 하는 영역이 여성에게 집중되기 때문이다. 이런 부담은 불면, 두통, 불안장애로 이어지며, 장기적으로 면역력 저하를 유발한다. 서울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의 연구에서는 가사·육아 스트레스가 심한 여성 집단에서 우울증 진단률이 1.8배 높게 나타났다.
여러 선진국에서는 이미 가사 노동을 단순한 ‘집안일’이 아니라 사회적 노동으로 인정하고 있다. 스웨덴은 부부가 가사·육아 시간을 균등하게 분담하도록 정책적으로 지원하며, 부모가 육아휴직을 나눠 쓰지 않을 경우 보조금 지급에서 불이익을 받는다. 프랑스는 청소·육아 서비스 비용의 절반을 국가가 세금 공제 방식으로 지원한다. 독일과 핀란드도 유사한 제도를 운영해 여성의 부담을 줄이고, 성별 균형을 실질적으로 개선하고 있다. 이러한 정책은 단순히 여성의 건강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넘어, 출산율과 고용률에도 긍정적 영향을 준다. OECD 분석에 따르면 가사·육아 지원 제도가 잘 구축된 국가일수록 여성 경제활동 참가율이 높고, 출산율도 안정적으로 유지됐다.
한국도 점차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정부는 최근 ‘가사 서비스 바우처’를 확대해 맞벌이·저소득 가정이 청소, 세탁, 돌봄 서비스를 지원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2024년 기준 약 15만 가구가 혜택을 받았으며, 향후 지원 대상을 넓히겠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지원 규모와 범위는 제한적이며, 인식 개선도 부족하다.
전문가들은 “가사 노동을 가족 내부 문제로만 볼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건강 문제로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가사 노동으로 인한 만성 질환 치료비용, 정신건강 문제로 인한 사회적 손실이 장기적으로 막대하기 때문이다. 여성학자 이은영 교수는 “가사 노동은 여성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사회 구조의 문제다. 제도와 문화가 함께 변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결국 가사 노동 불평등은 여성의 건강 문제를 넘어, 한국 사회 전체의 지속 가능성과 직결된다. 여성의 만성 통증과 정신적 스트레스는 노동시장 참여율을 낮추고, 출산율 감소와도 연관된다. 또한 장기간 누적된 건강 문제는 국민건강보험 재정에도 부담을 준다.
따라서 해결책은 분명하다. 가족 간의 공정한 분담, 사회적 인식 개선, 정부 차원의 제도적 지원이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 이는 여성 개인의 삶의 질뿐 아니라 한국 사회의 건강과 지속 가능성을 위해 필수적인 과제다. 가사 노동을 단순히 ‘집안일’로 치부하는 인식에서 벗어나, 사회적 가치와 건강 문제로 바라볼 때 비로소 실질적인 해결책이 마련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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